재배지 이동은 사과뿐만이 아니다.
함께 해석되어야 하는 문제이기도 하다.일본이 1876년 강화도 조약을 맺을 때부터 조선을 식민지화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근대화 프로젝트를 주도했던 세력과 식민지화를 주도한 세력이 다르기 때문에 두 논쟁은 다른 듯하지만.미국·러시아가 도울 수 없는 상황 중국이 전통적 관계를 깨고 스스로 제국이 됨으로써 위기를 벗어나고자 하는 시도는 조선 내에서 반발을 가져올 수밖에 없었다.학계와 시민사회의 거리를 좁힐 때 더 이상 역사가 정치적으로 이용되지 않을 것이다.
150년이 지난 현재의 역사가들 역시 이 시기를 평가하기는 결코 쉽지 않다.그렇다고 해서 다른 요인들을 무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시모노세키 조약의 1조는 이러한 주장을 무색하게 한다.
근대화의 실패가 식민지화와 반(半)식민지화를 야기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전제군주 국가 시절의 이야기이니 통치자 군주야 갈아 치울 방법은 없으나.
[중앙포토] 어진 재상(賢相)은 오늘로 보면 총리나 장관 등 고관대작이겠지만.재상이야 잘만 고르면 언제라도 역할을 할 수 있을 때의 말이었다.
통치자가 난세를 해결할 능력이 없다면 어진 재상을 발탁하여 보좌를 받고 있다는 것인가.자신을 선비라 하지 않으면 섭섭할 것이다.